싱가포르 도심에서 차량으로 20분 남짓 달려 도착한 SK건설의 NS2 케이블터널 공사현장. 지하 수십미터 공간에서는 거대 굴착기 TBM(Tunnel Boring Machine)이 쉴 새 없이 다이아몬드 칼날이 달린 커터헤드를 돌리며 터널을 뚫어나가고 있지만 지상에서는 굴착 공사 현장의 느낌을 찾기 힘들다. 간혹 터널 굴착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암석과 흙, 지하수 등을 분리 배출하는 컨베이어벨트 기계의 크지 않은 소음만이 들릴 뿐이다. 터널 굴착의 발파음이나 먼지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수직 갱도(샤프트)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끌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대 동굴 저편에서 TBM 장비가 땅을 깎아내는 굉음이 연신 들려온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로 옆에서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이 거대 동굴로는 싱가포르 전력의 향후 100년을 책임지게 된다는 수백, 수천 가닥의 고압 전력 케이블이 지나게 된다. 전체 면적이 서울의 1.2배에 불과한 싱가포르는 영토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거액을 투입, 영토 전역에 묻혀 있는 지중 케이블을 지하 케이블터널로 교체하기로 했다.
현재 싱가포르 땅 밑에서는 송전 현대화를 위한 지하 케이블 터널(전력구) 공사가 한창이다. 주롱섬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본토 전역에 손실 없이 공급하기 위해 동서(EW)와 남북(NS)으로 총 7개 공구에 걸쳐 공사가 진행 중이다. SK건설은 지난 2012년 이중 EW2, NS2 등 2개 터널공사를 수주했다. 싱가폴전력청(SPG)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따낸 민간전력업체 SP파워에셋이 발주한 공사다. 사실상의 정부 발주 공공 프로젝트. 싱가포르 전력 케이블터널 공사는 일본업체와 한국업체간의 수주 각축장이 됐다. 그 결과 동서(EW) 공구는 일본업체가, 남북(NS) 공구는 한국 업체들이 수주 우위를 점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각각 스시라인, 김치라인이다. 이중 양쪽 공구에서 수주에 성공한 업체는 SK건설이 유일하다. 수주액도 5200억원으로 SK건설이 가장 많다. 기자가 찾은 곳은 NS2 공구. 앙모키오부터 만다이까지 남북방향으로 총 연장 5.3㎞의 터널을 뚫는 공사 현장이다. SK가 맡은 또 다른 공구인 EW2(총 연장 6.8㎞, 공기 50개월)보다 터널 길이는 짧지만 공사기간은 68개월로 훨씬 길다. 싱가포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싱가포르강 밑으로 터널을 뚫어야 하는 데다 무른 지반의 제약도 극복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공사다. SK건설은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발파 굴착 대신 TBM 공법을 선택했다. 공사구간 수직 갱도(샤프트)를 지하 수십미터 깊이로 파고 들어간 후 TBM 장비를 이용, 수평 방향으로 땅을 깎아내듯 거대 동굴을 파나가는 형태다. 공구 양쪽 끝인 앙모키오와 만다이 샤프트에서 시작된 굴착 공사는 현재 마무리 단계. 2대의 TBM 장비가 양 방향으로 뚫어나간 직경 7m의 거대 동굴이 공구 중간 지점인 타고르레인 샤프트에서 합류하기 직전이다. 예상 개통 시점은 오는 12월. 터널이 개통되면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다. 각 샤프트 상부에 케이블터널과 송전선 등의 유지관리시설이 세워지고 이후 운영 테스트가 이어진다. 이성우 SK건설 싱가포르 케이블터널 NS2공구 현장소장은 “12월 터널 개통이 완료되면 사실상 어려운 작업은 모두 다 끝난다”며 “내년 2월부터는 운영 테스트 작업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영토는 대부분 지하 3~10m 지점에 점토층이 위치해 터널 공사 난이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케이블터널 공사의 평균 심도는 지하 60m. 평균 15~20m 심도에 위치하는 지하철 공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붕괴나 지하수 유출 등의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층 치명적이다. 평균 7~8%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중국업체를 제치고 SK건설이 2개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안정적인 시공관리 능력과 기술력, 터널 굴착 실적 등이 담보돼야 했다. 특히 지난 2013년 지하철 918공구 수주가 큰 힘이 됐다. 918공구는 2009년 첫 발주, 착공했으나 시공사 부도로 공사가 멈춰진 상태. 늦어진 공기를 만회할 수 있는 기술력이 절실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능력이 검증된 6개 업체만을 대상으로 제한 입찰에 나섰고 치열한 경쟁 끝에 SK건설이 최종 낙점받았다. 이 소장은 “SK건설이 처음 싱가포르 시장에서 수주한 지하철 공구가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개통할 예정”이라며 “그간 공사를 진행하며 보여준 시공 관리, 특히 안전 관리능력이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 등 관련 정부 부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SK건설은 지난 2009년 도심지하철 2단계 공사를 수주하며 싱가포르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이어 3단계 공사와 도로공사, 케이블터널를 잇달아 수주했다. 현재 SK건설이 싱가포르에서 진행하고 있는 토목 공사만 6~7개에 이른다. 다만 최근 들어 저렴한 인건비와 언어의 강점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며 수주 전선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부족한 기술력과 시공 경험을 보강하면 한국 업체가 설 땅도 차츰 좁혀들 수밖에 없다. 이 소장은 “손실을 보면서까지 해외 토목공사 경험을 쌓으려는 중국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지금의 기술력, 경험의 우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라고 귀띔했다. SK건설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차별화로 맞받아칠 생각이다. 공기를 칼같이 맞추는 시공 관리의 능력에 특화된 기술력, 축적된 공사 노하우를 결합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실제 이번 싱가포르 케이블터널 공사에서도 SK건설은 이전까지 외부 전문인력에 맡겼던 TBM 운영을 처음으로 자체 인력으로 소화해냈다.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미래를 향한 투자이자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싱가포르 정부의 까다로운 안전·환경 기준을 충족시키면서도 공기를 맞추는 업체는 한국업체뿐”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시장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에서 쌓은 경험과 관리능력이 다른 해외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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