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장례식] 퀸즈타운·부패조사국… 평생 일군 싱가포르 어루만진 마지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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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떠나던 날]

비가 억수 같이 내렸고 “리콴유” 외침·울음 뒤섞여
火葬… 한 줌 재로 돌아가

이 인재 빨아들이기의 선봉에 싱가포르 국립대가 있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 학교 학부생 가운데 약 3분의 1이 10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학생이다. 대학원과 교수진 중 60%가 외국인이다. 고인의 이름을 딴 ‘리콴유 공공정책 대학원’은 싱가포르 정부 요소요소에서 활약 중인 엘리트 관료들을 배출해온 산실이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8만명 이상의 외국인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인접 말레이시아에서 매일 통학하는 학생도 5000여명이다. “국비를 받고 싱가포르로 유학 오는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대표급 두뇌들이 모국(母國)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부분은 눌러앉는다”는 것이 현지 교수들의 설명이다. 실제 난양기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베트남 학생은 자기 나라의 대학교수보다 월급이 더 많다고 한다. 아들이 싱가포르 국립대 정치학과에 다닌다는 택시기사 로우 리(45)씨가 “국부가 마지막 가는 길에도 인재(각국 조문단)를 싱가포르 국립대로 빨아들인다”고 말했다.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관을 실은 포차가 장례식장인 싱가포르대로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시민이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국부(國父)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위 사진). 박근혜 대통령 등 세계 18개국 전·현직 정상이 참석한 장례식에서 고인의 아들 리셴룽 현 총리가 추도사를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아래 사진). /신화 뉴시스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의 마지막 가는 길.

예포(禮砲)가 발사됐다. 운구 차량은 슬로 화면을 보듯이 시속 15~30㎞ 안팎으로 움직였다. 이 장면을 눈에 새기기 위해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허리를 비트는 사람, 우산을 집어던진 사람들이 인도를 메웠다. 지난 28일까지 리 전 총리의 조문에 참여한 사람이 150만명을 넘어섰다. 싱가포르 국민은 국부가 떠난 지 엿새째에 접어들어도 추모를 거두지 않고 있다. 대표적 휴양지인 센토사섬의 카지노 업체는 국장이 열리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영업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시내 일부 대형 상가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문을 닫았고, 싱가포르민간항공국(CAAS)과 경찰은 운구 행렬 상공에서의 소형 무인 항공기 운항을 금지했다.

운구 차량이 시청 건물을 끼고 돌았다. 1965년 8월 9일 리 전 총리가 싱가포르의 독립을 선언한 바로 그 장소였다. 온몸이 흠뻑 젖은 알버트(53)씨는 “싱가포르의 50번째 독립기념일을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며 울었다. 퀸즈타운으로 접어들자 공공임대주택(HDB)들이 운구 차량 양옆에 도열하듯 서 있었다. 어촌(漁村)에 불과했던 50년 전 싱가포르 주민들에게 ‘내 집 마련’은 배부른 소리였다. 정부가 균질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한 덕분에 지금은 90% 정도의 싱가포르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오후 1시 47분 리 전 총리가 평생에 걸쳐 가꿔온 싱가포르 구석구석을 돌던 운구 행렬이 장례식장 앞에 섰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문화센터 앞에서 하얀색 제복, 붉은색 모자를 갖춰 입은 의장대가 일제히 경례를 붙였다. 조문객들은 문화센터 안에서 숙연히 ‘시대를 만든 인물’ 리콴유를 맞았다.

“오늘 우리는 건국의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국민은 ‘리콴유를 따른다면 살아남을 것’이라면서 신뢰했습니다.” 리콴유의 아들이자 현 총리인 리셴룽이 조사(弔辭)를 낭독했다. 아버지 리콴유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어김없이 목소리가 떨렸고, 그럴 때마다 그는 물을 마셨다.

공식적인 장례 절차는 여기서 모두 끝이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하늘이 갰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은 공립 만다이 화장터로 옮겨져 가족과 측근들만 참석한 가운데 화장(火葬)됐다. 2010년 90세로 먼저 세상을 떠난 리 전 총리의 반려자 콰걱추(柯玉芝) 여사도 바로 이곳에서 재가 됐다.

[출처: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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