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롤모델 싱가포르, 성장에 가려졌던 ‘세 개 암초’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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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독립 50주년

작은 국토의 한계
부산보다 작은 나라,19% 제조업…”간척으로 땅 늘리기 한계 올 것”

외국인 노동자와 갈등
외국인 유입, 인구 39% 차지…도시 밀집·집값 상승

시험대 오른 정치
리콴유 서거후 민주화 요구 목소리
야당 의석수 1석에서 6석으로 늘어
여당 분열 등 정치구조 변화될 수도

오는 9일 싱가포르 독립 기념일을 앞두고 1일 리허설 불꽃을 터뜨리고 있다. 연합뉴스기사 이미지 보기오는 9일 싱가포르 독립 기념일을 앞두고 1일 리허설 불꽃을 터뜨리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9일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독립 50주년을 맞는다. 싱가포르는 1959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은 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했다. 이듬해 싱가포르 내 중국계와 말레이계가 갈등을 빚으면서 23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치는 인종분쟁이 벌어졌다. 이 사태로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겨났다. “싱가포르의 독립은 정치적, 경제적, 지정학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했던 리콴유(李光耀) 당시 싱가포르 총리는 눈물을 머금고 분리독립을 선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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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자원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졌던 싱가포르는 지난 5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1976년 이후 연평균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6287달러를 달성했다. 미국(5만4630달러)과 일본(3만6194달러)을 웃도는 수치다. 깨끗한 공기와 물, 세계적인 대학, 인종 간 화합, 효율적인 정부, 시민의 질서의식도 싱가포르의 자랑거리다.

문제는 다음 50년이다. 싱가포르의 정신적 지주였던 리 전(前) 총리가 지난 3월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언론 자유와 민주적인 정부를 바라는 싱가포르 국민의 열망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부족한 땅과 인구 고령화는 싱가포르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빈부격차로 국민의 불만이 높아져가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홍콩보다 작은 땅에 제조업 비중 19%

싱가포르의 땅 넓이는 718㎢다. 서울(606㎢)과 부산(758㎢)의 중간 크기다. 인구는 540만명. 하나의 도시로는 충분한 면적이지만 국가인 싱가포르는 좁은 땅 안에 공항과 항구, 공장, 아파트, 쇼핑몰, 숲, 군(軍)부대 등 국가가 갖춰야 할 모든 기반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홍콩(1104㎢)과 비교해도 상황은 열악하다. 홍콩은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다. 공장 부지가 필요없다. 싱가포르의 제조업 비중은 19%로 독일(22%) 일본(19%)과 비슷하다. 기름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싱가포르는 미국 휴스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이어 세계 3위 정유 생산국이다. 엑슨모빌, 셸 등 세계적인 석유회사 공장이 싱가포르에 자리잡고 있다. 반도체와 조선해양도 세계 정상급이다. 지난 5월 미국 반도체회사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약 43조원)에 인수한 아바고테크놀로지가 싱가포르 회사다.

싱가포르 정부는 간척에 희망을 걸고 있다. 독립 이후 싱가포르는 바다를 매립해 약 140㎢의 땅을 늘렸다. 현재 국토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싱가포르 서남쪽 해안에 펼쳐진 공장지대와 호텔·카지노·리조트 복합시설인 마리나베이샌즈도 매립지에 세워졌다. 2030년까지 56㎢를 더 늘린다는 게 싱가포르 정부의 계획이지만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매립으로 땅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국민 불만

좁은 땅덩어리를 더욱 좁게 하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다. 영주권을 받은 외국인은 50여만명이다. 임시 거주 외국인은 이보다 세 배 이상 많은 160여만명에 달한다. 540만 싱가포르 인구의 39%를 차지한다. 2030년엔 외국인 인구가 지금보다 100만명가량 더 늘어날 전망이다. 도시가 붐비고 집값이 올라가면서 국민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 인구가 늘고 있는 반면 자국인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2030년엔 싱가포르인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90여만명의 베이비붐 세대마저 은퇴할 예정이어서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가워지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싱가포르 정부는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국민의 불만을 반영해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제한하면서, 2030년까지 이민을 통해 인구를 69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모순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출산장려금 지급과 출산휴가 확대로 자체적인 인구 증가를 꾀하고 있지만 높은 물가 탓에 싱가포르 젊은이들은 출산을 꺼리고 있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인테리전스유닛이 지난 3월 발표한 조사에서 싱가포르는 세계 133개 도시 중 물가가 비싼 도시 1위에 꼽혔다.

민주적인 통치로 이행이 가장 큰 시험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치구조의 변화를 싱가포르가 맞게 될 가장 큰 시험대로 보고 있다. 리 전 총리는 “시(詩)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치”라고 말했다. 경제 발전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민주적인 통치도 뒷전으로 밀렸다. 그동안 정부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았다. 야당이 싱가포르 의회에 처음 진출한 것도 1981년이었다. 당시 첫 번째 야당 의원마저 잇따른 소송으로 곧 의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감옥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11년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WP)이 총 87석 중 6석을 확보해 기존 1석에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은 81석을 차지했지만 득표율은 60.1%로 2001년 75%, 2006년 67%에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에 따라 온라인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일도 잦아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지난 6월13일 동성애자 권리옹호 행사에 2만8000명이 운집했다.

PAP가 당장 실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PAP가 분열돼 여러 당으로 갈라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케네스 폴 탠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부원장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한 조직에 몰려 있으면, 그 안에는 견해를 달리하는 야심가가 여럿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처: 한국경제]